나는 과일을 디저트로 먹는 경우가 많다.
밥을 먹고 나서 사과나 귤처럼 상큼한 과일을 먹으면 왠지 식사가 제대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든다. 물론 가끔 과일이 유난히 먹고 싶은 날에는 시간 상관없이 꺼내 먹기도 하지만, 나에게 과일은 여전히 '식후 디저트'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예전부터 다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과일은 밥 먹기 전에 먹는 게 좋아."
엄마의 설명은 이랬다. 밥을 먹기 전에 과일을 먹으면 어느 정도 배가 차서 밥을 덜 먹게 되고, 식후 혈당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왠지 일리가 있는 이야기 같았다.
문제는 실천이었다.
밥을 앞에 두고 있는데 과일부터 챙겨 먹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항상 밥을 먼저 먹고 자연스럽게 과일을 찾았다.
그런데 정말 과일은 식후보다 식전에 먹는 게 더 좋은 걸까?

식전에 과일을 먹으면 밥을 덜 먹게 될까?
이 부분은 실제로 관련 연구가 있었다.
건강한 성인 남성 17명을 대상으로 식사 전과 식사 후에 사과를 먹었을 때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식전에 사과를 먹었을 때 포만감이 더 높았고, 이어지는 식사에서 섭취한 에너지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성인 대상 연구에서도 식사 전에 통사과를 먹었을 때 사과소스나 사과주스를 먹었을 때보다 포만감이 높았고, 이후 식사량도 줄었다.
엄마가 말했던 '과일부터 먹으면 어느 정도 배가 차서 밥을 덜 먹게 된다'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근거는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런 연구들은 특정한 양의 사과와 정해진 식사를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다.
따라서 식전에 과일을 먹기만 하면 누구나 평소 식사량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 혈당에도 차이가 있을까?
이 부분은 조금 더 복잡했다.
식전에 과일을 먹으면 무조건 혈당이 천천히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구 결과가 모두 똑같지는 않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과 연구에서는 과일을 먹는 순서에 따라 식후 혈당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사과를 밥보다 먼저 먹었을 때 식후 혈당의 최고치가 낮아졌고, 키위 등을 이용한 연구에서도 특정 조건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최근 식사 순서에 관한 연구들을 종합한 자료에서도 과일이나 채소, 단백질 식품을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보다 먼저 먹는 방식이 식후 혈당 상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하지만 어떤 과일을 얼마나 먹는지, 함께 먹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과일은 무조건 식전에 먹어야 혈당에 좋다'고 말하기보다는 식사 순서가 식후 혈당 반응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과일은 식후에 먹으면 안 좋은 걸까?
여기까지 알아보고 나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밥을 먹고 과일을 디저트로 먹는 건 좋지 않은 걸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었다.
과일을 언제 먹느냐도 궁금한 부분이지만, 과일 자체를 균형 잡힌 식사의 일부로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과일을 먹는 형태도 생각해볼 만하다.
연구에서는 사과를 통째로 먹었을 때 사과주스 형태로 마셨을 때보다 포만감이 더 크게 나타났다. 과일을 갈거나 즙으로 마시는 것보다 씹어서 먹는 통과일이 포만감을 느끼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몇 시에 먹어야 하지?'만 고민하기보다는 주스보다는 통과일을 먹는 것처럼 전체적인 먹는 방법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결국 엄마 말이 맞았던 걸까?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결론이 재미있었다.
엄마가 늘 말했던 것처럼 식전에 과일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고 이후 식사량이 줄어들 가능성은 실제 연구에서도 확인된 적이 있었다.
식사 순서에 따라 식후 혈당 반응이 달라질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식전 과일을 먹으면 살이 덜 찐다'거나 '식후 과일은 혈당에 나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특히 체중은 과일 하나를 언제 먹었는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이야기는 완전히 틀린 것도,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공식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밥을 먹고 과일을 찾는 날이 훨씬 많을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식사 전에 과일이 보이면 한 조각 먼저 먹으면서 생각날 것 같다.
'엄마 말이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참고자료
- Farah NM, et al. (2019). Effect of Sequence of Fruit Intake in a Meal on Satiety.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 Flood-Obbagy JE, Rolls BJ. (2009). The effect of fruit in different forms on energy intake and satiety at a meal. Appetite.
- Lu LW, et al. (2023). Apple preload increased postprandial insulin sensitivity of a high glycemic rice meal only at breakfast. European Journal of Nutrition.
- Effects of meal sequence intervention on blood glucose response in healthy adults: a systematic review. Nutrition Research and Practice.
'건강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기 전 스마트폰, 정말 잠을 방해할까?|블루라이트 때문인 줄 알았는데 (0) | 2026.10.21 |
|---|---|
| 물은 하루에 2L 꼭 마셔야 할까? | 하루 물 섭취량에 대한 오해와 진실 (0) | 2026.10.20 |
| 계란 노른자 (콜린, 조리법, 균형 식단) (0) | 2026.10.13 |
| 우유 vs 두유 (영양 비교, 이소플라본, 선택법) (0) | 2026.10.12 |
| 토마토 요리법 (샐러드, 달걀볶음, 라이코펜) (0) | 2026.10.12 |